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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춘이란? | 정통 중국요리의 진수 |
1905年
1882년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우리나라는 청나라에 군대를 파견해 줄 것을 요청했고, 이때 약 40여명의 군역상인이 함께 들어옴으로써 공식적으로 화교들의 유입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듬해 통상조약이 체결되면서 화교유입의 길이 터지면서 인천공원(구 자유공원) 인근 북성동 일대 5,000여평 부지에 화교 거주지가 형성되었습니다. 이 곳을 청관거리라 하였고, 그들의 고급음식을 청요리라고 했습니다.
이 청관 거리에 국내에서는 최초로 산동회관(山東會館)이란 간판을 걸고 처음으로 영업을 개시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1912년 공화국의 밝아오는 아침이라는 뜻의 공화춘(共和春)이란 상호를 내 걸고 새 출발을 하게 된 것이고 자장면의 역사 1905년은 현재 공화춘의 전신인 산동회관이라 하겠습니다.
그 이후 80여년을 서민들의 애환과 고급요리로서의 공화춘의 명성을 유지하게 됩니다.
1984年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 당시 외국인에 대한 부동산 및 재산권 행사에 제한이 생기면서 많은 화상(華商)들이 경제적인 기반을 잃고 외국으로 이주하기 시작하자 화교(華僑)시장은 급격히 얼어붙었고, 청관거리의 고급 중국 요리집들은 눈물을 머금으며 폐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공화춘도 1984년 폐업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불행 중 다행으로 자장면을 처음 만들어 낸 역사적 성지 공화춘은 아직도 인천역 앞 차이나타운 내에 과거의 명성을 초연하게 유지한 채로 남아있습니다.
1988年
현재 대한민국 중국요리 전문점의 효시 공화춘 브랜드를 재건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수립하고 다방면의 전문가
(경영, 영업, 물류, 건축, 인테리어, 홍보, 디자인 등)와 관련 전문가(공화춘 출신 주방장)들이 의기투합하여 본격적인 재건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2002年
공화춘 재건 프로젝트 팀은 먼저 [공화춘(共和春)] 이란 서비스 상표부터 선점하는 작업을 추진하여 CJ(제일제당)으로는 물류 제조 유통 부문이 공화춘 프랜차이즈는 외식업 유통관련으로 분리하여 상표를 득하게 됩니다.
그를 필두로 본격적인 공화춘의 재건 작업에 착수하게 됩니다. 철저한 고증과 인적인 증언을 토대로 하여 보다 더 중국적으면서 한국적인 디자인을 모티브로 하여 프랜차이즈 시스템을 형성하기에 이르렀습니다.
2004年
2월16일 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으로 4개월간의 난공사를 마치고, ㈜공화춘 프랜차이즈의 본점이자 1호점(대표:이현대)인 ‘공화춘 차이나타운점’이 인천역 차이나타운 중심에 위풍당당하게 그 모습을 드러내었습니다.
250여가지의 초호화 메뉴와 일등급 주방스텝들의 손끝에서 나오는 전통의 맛과 멋, 그리고 공화춘만의 차별화된 서비스를 기반으로 우리나라 중국요리 대표 프랜차이즈로서의 힘찬 발걸음이 시작되었습니다.
인천시는 공화춘을 자장면의 원조임을 인정하고 자장면 100년 축제를 열 것을 선포함과 아울러 현재 자장면의 성지로 우뚝 서 있는 공화춘의 100년 건물에 자장면 박물관을 만들기로 선언 하였고 기초 조사와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2005年
10월 자장면 축제기간동안 국내외의 많은 매스컴들이 앞다투어 공화춘을 취재하여 다양한 논점들로 방송을 하기 시작하였고 그 일맥상통하는 내용은 [자장면의 원조 공화춘] 이었습니다.
2006年
㈜공화춘 프랜차이즈는 본격적으로 침체되어 있는 중식시장의 활성화와 정통 중식요리를 널리 알리기 위해 프랜차이즈 사업의 출범을 선포하기에 이릅니다.